나만을 위한 달리기 대회

매년 가을이 되면 스포츠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달리기 행사 혹은 마라톤 대회를 개최합니다. 그동안 자동차가 점령했던 도로는 그날 하루 동안 러너들의 플레이그라운드가 됩니다. 1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참여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쟁률을 자랑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달리기의 잠재 인구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자동차만 달릴 수 있었던 도로, 한강 다리를 점령하고 마음껏 달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일 수도 있고, 달리기에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 달리기를 더 즐겁게 즐기기 위해서,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달리기는 원래 외로운 운동이기 때문에 일 년에 몇 번 정도는 이런 큰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일 년에 2~3번은 이런 행사에 나가서 달립니다. 저는 동기 부여를 위해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달리기에 대한 동기가 부여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은 반대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혼자서 달리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혼자서 달리는데 이게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네 맞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러너들은 지금까지 혼자서 달렸을 겁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대회와 같은 거리를 혼자서 달리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해 '자신이 스스로 대회를 만들고 혼자서 대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스포츠 브랜드가 아닌 스스로 달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대회를 만드는 것은 평소 달리기를 하다가 "오늘은 좀 더 달려봐야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대회를 만든다는 것은 대회에 목적과 목표가 있다는 것이고, 그 준비도 철저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일 년에 1~2번 정도 저만을 위한 하프 마라톤 대회를 엽니다.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맞게 몸의 컨디션을 조절하고, 트레이닝 플랜을 잡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달리기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합니다. 준비물을 사고, 코스를 짭니다. 3시간 동안 들을 음악을 준비하고 플레이 리스트를 만듭니다. 대략 2개월 전부터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는데요. 저는 이 과정이 상당히 즐겁습니다. 어차피 혼자서 달릴 테니 누가 보지도 않을 테고, 3시간, 4시간 아니 반나절을 달린다고 해서 대회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빨리 달릴 필요도 없죠. 그냥 아주 오랜 시간 사색을 하면서 달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긴 거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저만의 달리기 대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대회의 존재 이유, 즉 대회의 목적과 목표입니다. 나약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입증하려고, 아들에게 부모의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실연의 고통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나태해지고 나약해진 마음을 잡기 위해서 달리기를 합니다.

종이를 한 꺼내고, 달리기 대회에 대해서 글을 써보세요. 달리기 대회의 제목을 정하고 내가 왜 달리는지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세요. 완주를 하면 나 자신에게 줄 선물도 정해보세요. 날짜를 정하고 대회 전날까지 매일매일의 계획을 잡아보세요. 처음 하는 분들은 쉽지 않겠지만 분명 아주 특별한 달리기의 기억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달린 나만의 하프마라톤 대회에서는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기에 그것을 잊으려고 달렸습니다. 거기서 전 큰 깨달음을 얻었죠.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15Km를 달려나았을 때까지는 머릿속은 온통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15Km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7K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통증이 극심해졌습니다. 웃기게도 그때부터 21Km 지점까지는 온통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내가 그렇게 힘들어했던 그 일들이, 고작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사라지는구나. 그래 어쩌면 그 일들은 나에게 힘든 일이 아니었을 거야. 아픈 다리보다 힘들지 않은 일이라면, 내가 이 아픈 다리를 끌고 완주를 한다면 나를 괴롭히던 그 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저는 새벽 1시가 넘어서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안양천 바닥에 누워서 한참을 하늘을 봤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저를 괴롭히던 일들에서 초연해질 수 있었죠.

혼자서 달려보면 달리기가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형 스프츠 브랜드가 진행하는 달리기 대회도 재미있고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고, 그것을 쟁취하는 것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이라도 자신만의 달리기 대회를 만들어보세요.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는 즐거움과 설렘을 느껴보세요. 그 대회를 통해 여러분은 더 성장하고, 더 멋진 러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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